
12시간 전
화마가 스친 자리에서, 다시 찾은 언양 화장산 굴암사
2025년 봄, 대한민국 곳곳이 또다시 산불로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강원, 경북, 경남…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검은 연기와 불길은, 단순한 재해를 넘어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무서운 현실이었죠.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깊이 울린 곳은 바로 울산 언양의 화장산이었습니다.
화장산은 울주 시민들에게는 기억 속 깊이 자리한 상처의 공간입니다. 2013년에도 화장산은 대형 산불을 겪으며 많은 생태계와 사찰,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을 잃었던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붉은 잿빛 기억은 아직도 선명한데, 올해 또다시 비슷한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어요. 그리하여, 불길이 지나간 그 자리에 직접 발을 디뎌보기로 했습니다. 오랜 세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화장산에 위치하고 있는 굴암사를 찾았습니다. 불에 그을린 나무들 사이로 피어오른 작은 들꽃 하나, 그 속에서 느낀 자연의 회복력과 고요한 위로를 사진과 글로 전해보려 합니다.
화장산 명칭의 유래
당시 신라 임금이 병에 걸렸는데, 점쟁이가 하는 말이 복숭아꽃이 신령한 약이라고 하였다. 남쪽 지방에서 복숭아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였는데 그 복숭아나무가 비구니였다. 임금이 비구니를 보고 크게 기뻐하였으며 병이 곧장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이 이 일을 기이하게 여겨 산의 이름을 ‘복숭아꽃을 간직하였다’라는 뜻에서 ‘화장산(花藏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위의 사진은 방문 당시 화장산 정상 일대의 모습입니다. 진화된 지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시의 참혹했던 모습을 바라보며, 굴암사로 향하는 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산 정상의 잿빛 풍경과 달리 굴암사로 향할수록 주변의 풍경이 초록색의 생기로 가득한 풍경들로 바뀌면서 불안감이 안도감으로 바뀌어갔습니다.
화장산의 높이는 271.6m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북쪽으로는 영남알프스 고헌산(高獻山)[1,034.1m]과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산세가 아름답거나 특징이 있는 산은 아니지만 어디에서나 접근이 쉽고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도화 습지는 산지 습원에서 보기 드문 식생들이 서식하고 있어 생태적으로 중요한 곳이라고 합니다. 굴암사로 향하기 전 주차장에서 내려다본 언양 일대의 전경과 언양읍성의 모습에 화장산 정상에서의 무거웠던 마음들이 바람에 희석되면서 기대감으로 변했고 얼른 굴암사로 향하고 싶은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정말 다행히 굴암사는 화장산 정상과는 다르게 초록빛으로 가득한 봄의 풍경으로 반겨줬는데요. 굴암사는 신라 소지왕 때(479∼500) 화도인(桃花道人)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고증할 만한 자료는 없다고 하는데요. 이후 고려 시대나 조선시대에 사찰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가 최근인 1966년 해인사의 승려 안석범(安石凡)이 폐사되어 있었던 이 사찰을 중창하여 이름을 미타굴(彌陀窟)이라 하였는데, 굴암사라는 명칭은 이때부터 함께 칭해졌다고 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굴암사에는 '미타굴'이라는 현판이 있는 폭 6m, 높이 2m 가량의 바위굴에 법당이 있으며, 굴 밖에는 바위를 깎아 조성한 마애 지장보살이 있습니다. 다른 사찰과 달리 바위 굴에 법당이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한데요. 앞서 이야기한 화장산의 명칭의 유래 속 도화(桃花)라는 이름의 승려가 있던 굴에 절을 세웠는데 그 굴이 바로 '미타굴'이며 굴암사의 기원이라고 전해집니다.
법당을 관람하고 아래로 내려오면 언양 일대의 전경과 함께 녹차밭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녹차밭은 고래 시대 때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차 나무가 자생하고 있으며, 2000년 산불과 2006년 태풍 때 산사태로 일부 유실되었던 것을 울주군의 협조로 유실되었던 차밭과 축대를 복구하였으며, 이후 2011년에도 석축이 분 되었던 것을 울주군에서 복구하여 지금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요. 녹차밭을 살펴보면서 화장산 정산 또한 굴암사 녹차밭처럼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5월 5일은 부처님 오신 날(석가탄신일)이라고 하는데요. 자연의 상처는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회복되지만, 그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견뎌낸 존재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겠다는 생각을 굴암사 녹차밭을 둘러보며 하게 되었는데요. 화마를 딛고 다시 푸름을 품은 굴암사와 녹차밭은 우리에게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이 봄, 화장산 굴암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세요.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도 다시 피는 초록처럼, 당신의 마음에도 조용한 위로가 스며들지 모릅니다. 🌿
- #울주군
- #화장산
- #굴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