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시간 전
안동에서 만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되고 큰 모감주나무
📍 안동 송천동의 모감주나무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1298-2
안녕하세요. 이종진입니다.
안동 반변천을 따라서
경국 대학교 앞을 지나쳐봅니다.
이곳에서는 동인문이 있는데요.
안동에 진입할 때는 이런 문이 있어서
안동을 떠오르게 합니다.
동인문은 안동시의 오대문 사업의 일환으로
전통 한식 목조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길이 38m,
높이 20m 규모입니다.
유교의 근본이념인
인의예지신을 바탕으로 결정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이 문을 지나치고 안동 시내로 다다르다 보면
선어대교가 보입니다.
좌편으로는 선어대생태공원이고
그 길이 선어대교입니다.
우편에는 경동로이며 이 길에 나무가 있는데
이것이 모감주나무입니다.
선어대교는 안동 시내에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길이고
모감주나무가 있는 경동로는
안동 시내로 가는 방향입니다.
차들이 안동 시내로 들어오기 위해
많은 교통량을 수용하고 있는 도로입니다.
이 나무의 첫인상은 상당히 메말라있다는 것입니다.
전국에 있는 여러 노거수를 찾아서
여행도 해보는 저로서는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노거수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오고 있는데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안이 비어져 있는데 노거수는 이런 형태가 많습니다.
의령의 의병장 곽재우가 의병을 모집할 때
의령세간리현고수에서 북을 치며 모집하였습니다.
현재도 남아있는데
그 나무도 오래되었지만 안이 비어져 있습니다.
현재는 3월이라 잎이 없는데
여름 때 즈음에 어떨지 궁금하네요.
7월에 꽃이 피는데 이때에 장마가 있기에
마를 알려주는 전령사로 역할을 합니다.
이때 노란 꽃을 펼치는데요.
개나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모감주나무의 종자는 단단하고 둥글며 광택이 있어
예로부터 염주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염주는 불교에서 기도를 하거나
수행할 때 사용하는 중요한 도구로,
일정한 개수의 구슬을 엮어 만듭니다.
모감주나무의 씨앗은 단단하면서도
가벼워 염주로 만들기에 적합하며,
자연 그대로의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손에 잘 감기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모감주나무는
불교와도 깊은 연관이 있으며,
사찰 주변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이 준 선물인 이 나무는 지금도 염주뿐만 아니라
조경수로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모감주나무(Maackia amurensis)란? 모감주나무는 염주나무라고도 불리며, 그 이유는 종자가 불교에서 사용하는 염주로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는 주로 바닷가나 강가에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낙엽 활엽수입니다.
특징 교목형(喬木形) : 비교적 키가 큰 나무로, 환경에 따라 10m 이상 자라기도 합니다. 잎 : 어긋나게 배열되며 1회 깃꼴겹잎(한 번 깃털처럼 갈라진 형태)을 가집니다. 작은 잎은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깊이 갈라져 있습니다. 꽃 : 7월에 피며 황색을 띠지만, 밑동은 적색을 띠는 것이 특징입니다. 원추꽃차례(圓錐花序)로 가지에 길게 늘어집니다. 열매 : 꽈리처럼 생겼으며 처음에는 연녹색이지만 익어가면서 짙은 황색으로 변합니다. 완전히 익으면 세 부분으로 갈라지며, 안에서 검은색 종자(지름 58mm)가 36개 나옵니다.
분포 지역 한국(황해도, 강원도 이남 지역), 일본, 중국
모감주나무는 해안가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조경수로 활용되며, 그늘을 만들어주고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종자는 단단하고 광택이 있어 염주뿐만 아니라 장식용으로도 사용됩니다.
모감주나무는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나무이며, 그늘을 제공하고 공기 정화 기능을 하는 등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나무입니다. |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무과의 낙엽나무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서 자란다. 7월이 되면 황금빛의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10월에는 꽈리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조경으로 가치가 높아 가로수나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열매는 검고 윤기가 있어 염주를 만드는 데 쓰인다고 하여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송천동의 모감주나무는 수령이 360년 이상, 높이는 15m, 가슴 높이 지름은 37cm이다. 우리나라 모감주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것이라고 한다. 모감주나무는 조선 중기 때 학자였던 정영방이 좋아했는데 그가 죽자 이듬해 아들들이 영양군 입암면 연당동 자양산에 있던 나무를 옮겨와 심었다고 한다. |
정영방의 아들이 이곳에 옮겨왔는데요.
영양의 인물인 정영방에 대한 이야기는
영양의 서석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영양의 서석지는
조선시대 민간 정원으로 유명한데요.
아름다우니 여러분들도 안동과 영양의 이야기를
함께 여행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정영방 정영방(1577~1650)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벼슬보다는 학문 연구에 몰두하신 분입니다. 성리학자 정경세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깊은 학식을 쌓으셨습니다.
29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셨으나, 당파 싸움과 정치적 혼란에 회의를 느끼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이후 경상북도 영양의 임천동에 은거하시며 학문과 자연 속에서 평생을 보내셨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 이후에는 서석지를 조성하고 학문 연구 공간인 경정과 주일재를 세우셨습니다. 만년에 고향 안동으로 돌아가 읍취정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시다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
이렇게 나무를 둘러보고
안동 시내로 진입하였습니다.
노을이 아름다운 안동인데요.
안동 여행 중에 나무를 찾아보는 여행도
이색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전국에는 보은정이품송, 대구최제우나무,
상주상현리반송 등 다양한 나무들이 있는데요.
안동에서 나무를 찾는다면
이곳에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 안녕.
본 내용은 이종진 안동시
SNS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안동시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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