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시간 전
안동 여행 오미고택마을과 광복운동기념공원
안동 오미마을 표석에 도착하면
오미1리 마을 표석과 함께 오미 광복운동
기념공원 근전 김재봉 선생 어록비 이정표가
마을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홍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홍살문보다 특이한 점이 보입니다.
봉황이 올려져 있고 봉황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너무나 특별한 홍살문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마을 입구의 문은
옆에 봉황문 안내판을 통하여
그 유래를 알 수 있는데요.
14대 유연당 김대현 공의 아들이 아홉이었고
1명은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나머지 8분이 모두 사마시에 합격 그중 5분이 대과에 급제하여
임금께서 팔연오계지미(八蓮五桂之美)라
크게 칭찬하였으며 마을 앞에 이문을 세우고
봉황문이라는 현판을 걸게 하였습니다.
이후 낡아 390년 만에 다시 세웠습니다.
마을 입구에 왕버들 아홉
그루를 심게 하였는데 그중 한 그루는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사하고 맙니다.
우연의 일치인 듯 한 그루는 고사하고
지금은 8그루가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오신다면
마을회관 앞에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이곳에 주차 후 마을을 돌아보시면 편리합니다.
공중화장실이 새롭게 건축되어
깔끔한 마을 첫인상을 남겨줍니다.
주차장에는 공중화장실과 마을회관 사이에
고택이 한 채 있습니다.
이 고택은 화수당입니다.
마을회관 마당에 꽃모종이 한가득 놓여 있으며
예쁜 꽃들이 활짝 피어나
봄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임시 화분에 담겨 있는 이 예쁜 꽃들은
아마도 마을 전체의
공동 공간에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기 위한
조경용 꽃으로 사용될 것 같습니다.
마을회관 우측으로 넓은 집이 보입니다.
이 고택은 안동 풍산 김 씨 영감 댁으로 처음에는 'ㄱ'자형의 안채만 있었는데,
이후 'ㅁ'자형으로 크게 지었습니다.
또한 이 집은 김두흠의 증손자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김정섭, 김이섭, 김응섭 형제가
태어난 곳이라고 합니다.
영감 댁 우측으로 솟을대문을 한 집이 보입니다.
학암 김중휴가 분가할 때 지은 집으로
이 집은 안동 학암고택 또는 참봉댁이라고
불립니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는
조선 후기 건축물입니다.
학암고택 대문 앞 광장에 어록비가 새겨진
마당이 하나 있습니다.
이 비는
항일 구국지사 근전 김재봉 선생 어록비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다가 옥고를 치른 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1922)에 참가하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으로
민족을 구하려고 나섭니다.
어록비 앞면에는 '조선 독립을 목적하고'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인기척에 놀라 지붕으로 올라간 새 한 마리
자세히 보니 후투티입니다.
보기 힘든 새를 이곳 오미마을에서 만나다니
오미마을에는 어떤 행운의 기운이 있는
마을인 것 같습니다.
학암고택 뒤로는 안동 하백당 종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유연당 김대현이
1576년에 처음 지었으며
그 후 임진왜란 대 불타 없어지자
1600년 김대현의 아들
학호 김봉조가 다시 세웠습니다.
이 집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정침은 정면 6칸, 옆면 5칸이며
사랑마루 한 칸이 나와 있어 정면이 7칸이 되며,
사랑채는 정침 서쪽에 있고 정면 3칸,
옆면 2칸으로 높게 쌓은 단 위에 지었습니다.
대청과 방으로 이루어졌으며,
대청에는 쪽마루를 설치하고 난간을 두었습니다.
사당은 뒤쪽 별도의 공간에 담장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당이 집안 담장 내부에
두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이곳 하백당 종택은 별도의 공간에
사당을 마련하였다는 점이 특별하게 보입니다.
영감 댁 바로 뒤편 마을 중심에 키가 큰 고목
한 그루가 우람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입니다.
나무 앞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 장소의 이름이 '황소나무 뚝'이라고 합니다.
오래전 아주 큰 소나무가 있어 황소나무 뚝이라고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황소나무는 쓰러지고
대체목으로 심은 느티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오미마을에서는 마을에서 새를 여럿 만납니다.
마을과 가까이 살면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새들처럼 보이며
이러한 새들의 노랫소리는 오미마을을 더욱
행복한 마을로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동 삼벽당입니다.
김상구가 분가하며 지은 집으로 18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삼벽당이라는 이름은 김상구의
아들 김종한의 호를 딴 것입니다.
'ㅁ'자형의 기본 구조에 대문채나
사당 등은 따로 두지 않았으며
사랑마루의 벽에 감실을 설치하여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다락을 두어 수납공간을 확보하는 등
조선 후기 안동 지방 민가의 특성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오미마을 언덕에는 오미광복운동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장소는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이며
풍산김 씨들이 일제 강점기에 이에 항거한 행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역사적 현장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단식으로 순절한 김순흡,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원이었던 김응섭,
일본 황궁에 폭탄을 투척한
의열 투쟁의 대명사 김지섭,
만주 하얼빈에서 순국한 김만수,
사회주의 운동가 김재봉 등
24분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한 곳입니다.
기념탑에 담긴 뜻을 알아보면
탑신 기단의 여덟 송이 연꽃 형상과
탑주의 다섯 줄기 계수나무 형상은
팔련오계지미로 나라에서 이름을 내린
오미동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상징합니다.
그 위의 불꽃 형상은 겨레와
조상의 얼을 이은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기개와 애국애족의 충혼이
영원불멸의 불꽃으로 온누리를
비추고 있음을 표현합니다.
타임캡슐에 담긴 뜻을 알아봅니다.
탑 아래 타임캡슐을 묻었는데
21세기 풍산김씨 허백당 문중의 생활상이 담긴
풍산김 씨 세보, 세적, 마을 관련 서적과 사진,
유통화폐 등을 담았습니다.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시기는
앞으로 500년 뒤인 2508년 4월 16일이며
이를 통하여 조상들의 삶을
상고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00여 년 세월 오미마을을 지켜온
청백송 아래 풍산김 씨 선조의 신도비와
연계정이라 편액한 육각 정자도 함께 세워
조상의 훌륭한 얼을 되새겨
역사의 현장이 되게 하였습니다.
장암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풍산김 씨 오미동 문중에 소장 전래한
'풍산김 씨 세전 서화첩'에 있는 그림으로
공의 호는 본래 유경당이었는데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온 후
호를 고쳐 장암이라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과 서로 접촉하지 않고
남모르는 소회를
가끔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평소에 졸게 지나던 자가 공의 장암을 그림으로 그려
경모하는 마음을 붙여두었다고 합니다.
안동 오미마을을 돌아보며
현재 발전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있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독립운동의 희생정신이
있었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는
아주 귀중한 역사 여행 시간이 되었습니다.
따뜻해진 계절을 맞이하여 이번 주에는
안동 오미마을을 한번 방문하여 보시는 건 어떨까요?
📍 안동 오미마을
주소
경북 안동시 풍산읍 미동길 56
본 내용은 정한윤 안동시
SNS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안동시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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