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시간 전
[제6기 봉화군 서포터즈] 춘양 읍내는 살아있는 정자 민속촌 | 류중천 님
춘양 읍내는 살아있는 정자 민속촌을
소개합니다.
봉화는 많은 누정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봉화지역은 태백과 소백의 양백이 만나는 위치해 있어 산수가 빼어난 고장입니다.
봉화는 우리나라 현존, 제일 많은 누각과 정자, 100여 개가 있으며,
없어진 누정이 70여 개로 170여 개가 누정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그중 봉화 춘양면 소재지에 있는 누정이 10여 개와 고택등, 역사와 자연이 살아 있는 곳, 옛것과 새것,
산과 물이 잘 어우러져 훌륭한 자연 속에 깊은 역사가 녹아 있는 춘양 읍내 누정을 소개 합니다.
“낙천당, 백산정, 연주정, 종진암, 태고정, 한수정, 산천정사, 와선정, 만산고택(정와), 성암고택, 성암재, 종오헌” 등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로, 멀리 있다고 해도 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정자의 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누정이 있습니다.
낙천당
낙천당은 낙천마을 철길 옆으로 따라가면 태고정이 나오고 권진사댁 바로 못 미쳐 자리 잡고 있다.
김람(1601~1677) 호는 수복으로 본관은 안동으로 사선대부를 지냈다.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까지 인조를 호종하였고, 이후 노부모를 모시고 봉화 춘양에 낙향하여 낙천당을 지었다. 명나라가 망하자, 명나라를 섬기던 신하가 청나라를 섬길 수 없다는 대명절의를 지키고 벼슬을 버리고 태백산 아래 (춘양,법전등) 은거하던 ,강흡,심장세, 홍우정, 정양, 홍석을 태백오현이라 불렀으며 이들과 함께 절의를 지키며 교류하던 곳으로 어려운 가운데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고 하여 낙천당이라 불렀다.
돌과 흙으로 담을 치고 하부에는 다듬지 않은 사괴석을 놓고 문은 중앙에 두고 사주문 형식이다.
지붕은 작아도 서까래와 부연을 모두 사용한 맞배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 주소: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250번지 ▼
태고정
창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면, 갠 이내와 검푸른 산이 창연히 옛 빛깔 그대로요.
베게에 기대여 한가로이 들어 보면 우는새와 흐르는 물이 낭랑히 옛소리 그대로였으리라. 라고 태고정 정기에 적고 있다.
태고정은 통정대부, 중추원의관, 도산서원장을 지내던 만산 강용(1846~1934)이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흙 돌담에 기와를 얹은 정자이다. 을사늑약 이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태고정을 세우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후배를 양성하며 보낸 곳이다.
바로 옆으로 낙천당이 있으며 몇 미터 거리에 권진사댁 후손의 사는 고택과 권진사댁이 자리 잡고 있다.
▼ 주소: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251-1 ▼
산천정사
깊고 너른 골짜기는 한가롭게 머물만하고, 산 아래에서 솟아나는 샘은 마실만 하다.
멀리로는 산이 빙 둘러있고 가까이로는 물이 맑아서 가히 조망하면서 답답함을 풀 수 있다.
'달 밝은 고요한 밤에 옥돌 구르듯 흐르는 샘물 소리를 듣고 맑고 깊은 연못의 물을 보며 유유자적 늘 그막에 즐기려 함이다. '라고 정사기를 적고 있다.
권진사댁(권철연)의 맏아들 권상경 (1890~1955)이 지은 정자이다.
석당 권상경은 어린나이에 독립운동 진영에 활동하였고,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의 서명운동을 주도하였고 1926년, 심산 김창숙이 독립자금을 모집할 때 거액의 독립자금을 제공하는 한편 심산을 숨겨주는 독립운동을 하였고, 2005년 독립유공자로 추서 되었다.
권진사댁 뒤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선비들과 교유하며 시를 읊는 장소로 삼았다.
현재 후손이 별장처럼 거쳐하는 곳이다.
▼ 주소: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243-1번지 ▼
연주정
연주정은 홍여방이 서울에 건립한 것을 후손들이 지금의 장소로 옮겨온 것이다.
연주당 홍여방(1381~1438)은 남양이 본관이며 이조참의, 대사헌, 한성부윤, 경상도관찰사, 판한성부사, 이조판서등을 지냈다.
정자는 기억자형을 취하고 있으며, 제월현이라는 한 칸의 마루가 있고 오른쪽 전면에 연주정이라는 현판을 단, 정면 3칸 측면 1칸 반에 누마루와 공포를 갖춘 팔작지붕이다.
삼척봉이라는 작은 산봉우리에는 명부대라는 정자가 있고, 그 아래 운곡천 물길이 굽이치는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 곳에 연주정이 있다.
▼ 주소 :봉화군 춘양면 소로리 675 ▼
백산정
강하규(1813~1883)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1915년에 후손이 건립한 정자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백초공 강하규는 만산고택 강용의 부친으로 동부승지, 대사간, 예조, 이조참의, 북청 부사 승지들을 거쳐 고향 춘양으로 낙향하였다.
사방 흙 돌담으로 둘렀고 정면과 좌측면에 문을 두고 있다.
▼ 주소: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312-2번지 ▼
종진암
종진암은 권재익(1820`1901)의 청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권진사, 권철연과 아버지 권중하(1849~1919)가 배움의 씨를 뿌려서 보배가 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종진이라는 이름을 붙여 후손들의 교학처로 삼고자 했으며, 권철연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산소가 가까운 산기슭에 옮겨 사모하는 마음을 담을 수 있고 머물며 공부하기 편리하도록 현재의 춘양역 뒤편 자리로 옮겼다.
▼ 주소: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86-5 ▼
한수정
조선 선조 31년(1608) 세워진 정자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충재 권벌(1478∼1548) 선생이 세운 거연헌이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없어지자 그의 손자인 권래가 이 정자를 세웠다.
권벌은 중종(재위 1505∼1544) 때 사람으로 예조판서 등을 지내고 죽은 후에 좌의정에 올랐다.
건물은 T자형 평면으로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에 팔작지붕 건물과 바닥을 한 단 높여 온돌 2칸과 사방에 마루를 둔 건물이 붙어있다.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하여 '한수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며, 3면에 연못이 둘러져 있고 주위에 수목이 정자와 잘 어우러져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2048호지정 되었다.
▼ 주소: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번지 ▼
[와선정]
와선정은 이른바 태백오현이 교유하던 장소이다.
병자호란(1636년),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2차 침입으로 청나라를 섬길 수 없다는 대명절의로 벼슬을 버리고 태백산 아래 (춘양,법전등) 은거하던 홍우정 ,강흡, 심장세, 정양, 홍석를 태백오현이라 불렀으며 이들과 함께 절의를 지키며 교류하던 곳으로, 정자 규모는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정면에는 판문이 각 칸에 1개소씩 설치되어 있다.
시냇물과 면한 후면에는 세 살 분합문이 들어 열 개 식으로 되어 있다. 폭포와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바위는 사덕암이고, 폭포는 은빛폭포라, 전해오는 말처럼 바위와 폭포, 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옛것을 보아야 오늘이 보인다고 합니다. 산천경개의 오묘한 조화 속에 유장한 역사의 숨결을 정자 툇마루에 앉아 느끼며,
자연 속에 녹아든 누정에서 호젓하게 봄바람 맞아 보면 어떨까요?
봉화 춘양은 현재와 미래가 잘 어우러진 곳으로, 고택과 정자가 즐비하고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백두대간 수목원이 있고, 억지춘양 장날이 푸짐하게 열리는 곳입니다.
*제6기 봉화군 서포터즈
류중천 님의 글과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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