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장도박물관을 소개하기에 앞서

‘끄리스(Keris)’ 이야기를 먼저 하려 합니다.

끄리스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독특한 형태의 단검을 의미합니다.

한국어로는 "끄리스" 또는 "케리스"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물결무늬 또는 비대칭 형태의 단검으로,

칼날에는 매우 정교한 문양인

‘빠모르(pamor)’가 새겨집니다.

끄리스는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명예를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하는데

끄리스는 풍요로움과 같은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지닌

신선한 보검입니다.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UNESCO)는 2005년에

인도네시아의 끄리스를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 으로

등재했습니다.

그런데 ‘끄리스’와는 결이

조금 다를 수 있으나,

한국에도 이와 비견할 만한

고유의 칼이 있습니다.

바로 ‘장도(粧刀)’입니다.

끄리스와 장도 모두 각각의 문화권에서

물질적 가치를 넘어 정신적 의미를 담아낸

'칼 이상의 존재'였다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광양읍에 있는

3대에 이어 장도를 제작, 전수하고 있는

‘광양장도박물관 및 전수관’을

다녀왔습니다.

장도의 숨겨진 진정한 가치와

장도를 만드는 장도장의 삶에 대해

조명해보겠습니다.

'광양장도박물관 및 전수관'은

광양장도박물관을 설립한

도암 박용기 옹의 뜻을 이어,

그의 후계자인 2대 장도장 박종군 장도장이

운영하는 공간입니다.

'장도'라고 하면 흔히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은장도'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하지만 광양장도박물관을 찾아가면,

장도가 단순히 하나의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와 용도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한 장도의 섬세한 제작 과정은 물론,

장도에 깃든 지조와 충의,

정절의 정신까지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습니다.

1층에는 장도 전시실을 비롯한 다양한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격을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나는

장도들도 전시되어 있는데요.

대나무에 마치 수묵화를 새겨 넣은 것처럼

섬세한 무늬와 그림이 인상 깊었습니다.

1층에 있는 제1전시실은

광양장도박물관의 설립자인 도암 박용기 옹과

2대 박종군 장도장, 그리고 3대에 걸쳐

장도장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젊은 장도장의

프로필과 함께 다양한 장도의 종류를

전시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제1전시실을 둘러본 후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

제2전시실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현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장도'에 대한 수요는

점차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장도를 제작하고

전통을 이어가는

국가무형문화재 장도장 역시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광양에서 뿌리를 내리고,

대대로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더 귀중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장도'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패용하던 은장도를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자주 접하셨을 텐데요.

하지만 실제로 장도는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고,

그 세밀한 기교와 아름다움 덕분에

장도를 접하고 나면

마치 예술의 영역처럼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장도는 긴 칼이란 뜻의 ‘장도(長刀)’가 아닌

'단장하다'는 뜻을 담은 한자어에서 유래하여

'장도(粧刀)'라 불리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끄리스’와 마찬가지로

장도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정절과 신의를 상징하는 의미가 강해

예술이나 패용 목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종류 또한 다양한데,

조선시대 평민들이 즐겨 사용하던 장도인

‘죽절형목장도’와

‘을(乙) 자’ 모양을 띤다고 해서 ‘을자도’

장도 중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어 만든

'은장 화각 사각도'도 있습니다.

알록달록하고 원색적인 꽃무늬가 입혀진

은장 화각 사각도는,

현대의 젊은 세대 취향에도

잘 어울릴 만한 세련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도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제작할 수 있는데요.

우골(소뼈), 상아, 금, 은, 대나무, 옥 등

여러 귀한 재료들이 사용됩니다.

사용되는 소재에 따라 장도의 분위기와

느낌이 크게 달라지며,

각각의 특성을 살려 모양과 기교, 장식 방식

또한 매우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로운 소재와 표현 기법 덕분에,

장도는 단순한 호신용 칼을 넘어

개인의 품격과 미적 감각을 담아낸

예술품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기능으로의 ‘장도’를 보면

옛 조상들의 지혜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장도에 붓의 기능을 더한 ‘붓장도’는

무려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 시대의 창의력과 멋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옛 조상들은 장도에 젓가락을 부착해

외부에서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이 상했는지,

독극물이 들어 있는지 감별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이를 바로 ‘첨자도’라고 부릅니다.

근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펜’이 보급되어 펜이

‘붓’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펜대 모양을 갖춘 ‘펜장도’도 생겨났습니다.

도암 박용기 옹이 1970년대 초반에

처음으로 시도하여

2002년 10점을 다시 제작했다고 합니다.

장도에 젓가락을 붙이거나,

붓과 펜의 기능을 더하는 등,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실용적인 기능을 갖춘

장도들도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장도들을 통해 조상들의 지혜와

섬세한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2층에 있는 '제2전시실'에서는

장도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조형미는 물론,

설립자 박용기 옹의 삶과 장도를 향한

그의 사랑과 열정이 깃든 소중한 흔적들도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광양을 상징하는 '매화' 문양을

정성껏 새겨 넣은 낙죽장도,

표면에 섬세하고 정교한 무늬를 새긴 을자도,

그리고 매끈하고 유려한 곡선미를 지닌

‘곡옥(曲玉)’을 활용한 또 다른 을자도와

팝아트의 무늬 패턴을 보는 듯한 장도까지.

장도는 정교한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섬세한 문양, 절제된 아름다움,

재료 본연의 특성을 살린 뛰어난 조형미는

장도가 지닌 예술성과 고귀함을

한층 더 빛나게 합니다.

전시장 한쪽 끝에는, 도암 박용기 옹이

이곳 장도 전수관을 증축하고

공방을 세우던 그 시절의 소중한 흔적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실제 장도를 만들 때 사용했던 받침목,

명문모루와 소도리, 정, 집게, 칼날이며

낙관과 인감도장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장도’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장도장의 치열한 삶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전시 공간에서는 1대 장도장

문화재 보유자 인정서를 비롯해

문화훈장, 각종 표창과 수상 상패 등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용기 옹께서 평소에

가장 귀중하게 여긴 것은 따로 있는데요.

바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교과서에

‘광양 장도와 박용기 옹’이

소개된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상과 훈장보다도, 어린 학생들이

교과서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배우고,

장도라는 소중한 유산을 알게 되는 것에

더 큰 보람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이는 박용기 옹이 장도를

단순한 기술이나 공예를 넘어,

우리 문화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끄리스가 하나의 무기를 넘어

정신과 신앙의 상징이 되었듯이,

한국의 장도 또한 단순한 칼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정신을 담아낸 존재였습니다.

광양에서 만난 장도장의 손길에는,

변치 않는 마음을 뜻하는 '일편심(一片心)'이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일편심’은 장도에 깃든

애국심, 효심, 그리고

굳건한 지조를 의미합니다.

이는 조상들이 일상에서

장도를 늘 품으며, 바르고 떳떳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장도는 한국인의 정신과 미학을

오롯이 담아낸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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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부서에 문의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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